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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지성으로 합니다. Publish on May 27,2023 | 갈릴리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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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릴리선교교회
댓글 0건 조회 433회 작성일 23-05-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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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왕의 가장 큰 위기는 왕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왕좌를 노립니다. 그런데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좌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사건은 서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압살롬은 자가 누이를 성폭행한 암논을 용서하지 못해서 죽였고, 다윗은 그런 압살롬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은혜와 용서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용서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용서가 저절로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손해를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용서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대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지성의 문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첫째, 용서하지 않으면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않으면 이런 마음을 품기 어렵습니다. 대신에 육체의 소욕대로 행동합니다.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됩니다.


둘째, 용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일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면, 또 다른 사람과도 불편해집니다. 내 안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하면 은연중에 다른 사람에게 투사(投射)하게 됩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는 경우, 대부분 둘 중 한 사람이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분노, 적대감이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셋째, 용서하지 않으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먼저 사과하거나 화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대신에 상대방이 그렇게 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삶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용서로 과거를 변화시킬 수는 없으나, 미래를 새롭게 할 수는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저주의 사슬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끊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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